Waverly Place와 Green가 사거리에 책 수백권이 흩어져 있고 사람들은 멈춰서서 책더미를 뒤졌다. 약간의 비 내리고, 대학 사람들이 늘 줄 서는 Oren 커피집 (문예창작 수업 같이 듣는 Jessica가 일하는 곳이라 요새 좀 더 자주 간다) 앞이라 그런지 갑작스런 서적처분을 반가워하며 주저앉아 골라내는 사람이 많았다. 좋아하는 음악 레코드판도 꽤 찾을 수 있었는데, 전축도 없으면서 LP를 모으는 건 내가 하기에도 너무 hipster다운 짓이었기 때문에 그냥 커피만 샀다.
한편 오늘도 두세 군데 서점에 습관처럼 들렀지만 읽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요새 나오는 책들은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고 골라야 되서 피곤하다. 예전에는 대충 훑어보면 질이나 급을 약간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기준이 변한 것도 있고 겉보기에는 다들 멀쩡하게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덜컥 골랐다가 입맛을 버린 적이 많이 있다. 책의 인기라는 것이 영화 관객수나 음반 판매량 정도로 의존하기 어려운 잣대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예컨데 이번 주 New York Times Book Review 표지에는 Malcolm Gladwell(Blink! 쓰신 분)의 새 책이 실렸다. 뭐 돈 많이 버시는 분이고 글도 술술 잘 쓰시는 분이긴 한데 표지에 오른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 게다가 Vladimir Nabokov (Lolita)의 유작도 제치고 Paul Auster 신작도 제쳤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많이 상영해 주는 걸로 개인적으로 유명한 Sunshine Cinema를 지나는데 모든 포스터들 뒤에 새 Twilight 영화 포스터가 줄줄이 덮어씌워져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버스 타고 학교 간다. 사실 시간표에 딱 맞게 안 오는 버스 기다리고, 항상 바쁜 Houston 로를 꾸물거리면서 가고 정거장까지 좀 걷고 해야 해서 종합하면 걷는 거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는데, 그래도 여유 좀 부리면서 뭐라도 읽고 마시면서 가기 좋게끔 버스 탄다.
프랑스 가게 됐다. 확실하지가 않아서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지난 달에 못 가게 된 줄 알았던 것에 약간의 탄원을 좀 더해서 비집고 들어왔다. 세 가지 경로로 호소했는데 지도조교 Ann이 study abroad 과정에 아는 사람이 있어 전화와 전자메일을 넣었고, 내가 직접 가서 담당교수 비서에게 얘기 좀 하고, 마지막으로 추천서 써 준 Jennifer가 담당교수 절친이라 한 마디 전해 줬다. 사실 마지막 것이 결정적인 거 같기는 하다. 내가 지원한 기간이 추가지원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실 총 4명밖에 못 붙었었는데, 모두 프랑스어 전공자들이라고 하니까 아직 부전공 선언도 안 한 나를 안 붙여준 건 애초에 당연한 거였지만 어쨌든 결국엔 가게 되었다. 이제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잔병치레의 장점이란 아프지 않도록 사는 방향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즉 면역이란 생명적인 부분 뿐 아니라 생활적인 부분도 크다는 것이다. 생각없이 살다가 계절 초에 된통 아프고 나니, 코만 훌쩍거려도 「아 지금 아프면 좆되겠구나」 싶어서 덜덜 떨면서 무모하지 않은 쪽으로 생활을 정돈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런데 어제 뭐 좀 도와 달라는 친구가 너무 귀찮아서 아프니까 꺼지라고 했는데 과연 말이 씨가 되어 저녁쯤 되니까 슬금슬금 병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다. 천벌이라고 판단, 내일 도와주기로 약속을 잡고 없는 시간을 내어 아홉 시간 잤다. 방이 더운데도 헐벗을 수 없었다. 현재 약간의 기침 증세는 있지만 심각해질 것 같지는 않은 상태. Grounded에서 생강차를 마셨는데 왠지 낭만적으로 병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생강차는 안 좋아하지만 아플 때는 마실 만 하다.
이윽고 십일월이 꺾이면서 한 해가 급하게 종결되는 기분이 곳곳에서 든다. 여름에 새카맣게 타서 쭉 닫았던 Teany 찻집이 여닫개(shutter)를 올리고 내부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는 한 뉴욕에서 세 번째 일어난 가을이 된다. 아무래도 대학이 젊은이를 잡아 두는 방식이 살짝 너무 강력한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짐(John Krasinski)봤다. 지금 앉아있는 트라이베카 홀푸즈 마켓에 오는 길에 Walker + Lafayette에서 모자 쓰고 큰 갈색 개 (미친 척하고 인터넷에서 「존 크라진스키 개」검색해 보면 붉은 여우 라브라도라고 나온다) 데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태연한 척 했지만 이내 빛의 속도로 전체문자를 돌렸다. 짐봤다고! 지난 번에 토비본 것에 이어 또 반가웠다. 오피스를 자주 보다 보니까 그 배우들만 눈에 보이는 건지, 다른 사람은 별로 본 바 없는데 줄줄이 보인다. 이제 Steve Carell 볼 차례인데...
어제 오전... 같은 오후에는 유진누나가 집 근처로 내려와서 아점을 먹고 커피집에서 묵묵히 공부도 좀 했다. 삼장회 관련해서 작업 상당 부분이 좌절된 기념이었는데 날씨도 따뜻하면서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것이 참 좋았다. 초저녁쯤에는 삼갯이 도착, 유진누나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누나와는 헤어지고 적막한 인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형수와 통화를 했다. 우리가 창 앞에서 맛있게 먹어 준 결과 나올 때 쯤에는 음식점이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었다. 또 어제 Cameron 생일이라 잔치에 가려고 했으나 그냥 삼갯과 노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처음으로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특출난 옥상은 아니지만 우리 것이라 좋았다. 걸터앉아서 맥주 한 잔씩 했다. 삼갯이 지난 번 와서 자고 갔을 때에 비해 집안이 많이 안정돼 보였나보다. 어젠 정말로 해 지는 색깔이 기똥찼다.
방 북쪽 벽을 통채로 찍어보았다. 방이 기형적으로 긴 관계로 한쪽이 뻥 뚤린 옷장 같은 구조로 살고 있다. 왼쪽 상하로 둘 달린 봉은 원래 방에 있던 것이고 중앙의 큰 옷장은 작년에 쓰던 것을 변형한 것, 오른쪽 신발들은 재작년 도매한 신발상자를 쌓은 것이다. 매우 큰 거울은 길거리에서 주워왔다. 본래 왼쪽 아래 조금 보이는 가방을 옆쪽 벽에 못을 박아 차례로 걸어놓았었는데 매번 걸었다 내렸다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그만두었다. 대신 침대 아래로 치우려던 수레를 바닥에 눕히고 의자와 서랍상자를 그 위에 덮어 가방을 올렸다. 여기에 방석을 놓아서 의자로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방은 좁고 물건은 많아 하루만 막 살면 여지없이 개 꼴 되는 상황이므로 그걸 면하기 위해서 생활습관이 바르게 드는 것 같다.
오늘은 전선을 좀 만지다가 가벼운 감전이 되어서 잠깐 고생했다. 어제 늦게 들어와서 늦게 통화도 하고 그리고 나서 책도 좀 읽고 느긋하게 잤고 오늘은 오전을 다 보내고 나서 일어났다. 이제 다섯 시 정도면 밤이 오기 때문에 이래서야 햇볓을 쬘 수가 없다. 두부와 버섯에 양파를 잔뜩 넣고 대충 볶아서 점심으로 먹고, 동네 중국집에서 오렌지 닭고기 요리를 사와서 저녁으로 먹었다. 오늘은 유난히 우리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커피도 바로 옆 상가에서 사 먹었다. 동네 철물점에서 상자를 두 개 사 와서 침대와 매트리스 사이에 깔았다. 공기침대를 치웠더니 얇은 매트리스가 좀 배기는 것 같아서 댄 건데 이제 확실히 좋아졌다.